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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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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을 보는 병(박건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6-25
조회 47068
귀신을 보는 병
 
박건우 교수(고려대학교병원 신경과)
 
무더운 여름의 더위를 쫓는 방법으로 공포영화가 있다. 공포영화로 치자면 귀신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밤이면 마당에 있던 화장실에 갈 때마다 누구와 함께 가야 했고, 무언가 모르는 두려움에 휩싸였던 것은 화장실 귀신이야기 때문이었다.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야기는 귀신을 보는 병에 관한 이야기 이다.
 
한 어르신이 진료실로 찾아오셨다. 기억이 없어지고 몸도 느려져서 오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보호자로 오신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저.. 그런데 저 영감이 좀 이상해요. 밤이면 작대기를 들고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자꾸 나가라고 해요. 처음에는 저한테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집에 사람이 들어와 있다는 거에요. 제 눈에는 안 보이는데…..’ ‘화장실에 가면 갑자기 뛰어 나와요, 욕실에 사람이 있다고 해서.. 제가 가서 보면 아무도 없는데, 분명 눈앞에 무엇이 보이는지 마구 소리를 쳐요.’ ‘저 영감이 귀신을 보는 것이 틀림 없어요’
 
어르신 부부 두 분만이 있는 집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공포스러운 일이다. 할아버지를 의지 하면서 사셨던 할머니의 모습은 걱정과 공포로 휩싸여 있었고, 이런 이야기를 남들에게 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며 속 상해 하셨다.
 
할아버지에 따르면, 분명 어떤 놈이 침대에 주워 있어 화가 나서 작대기를 휘둘렀다고 하였다. 화장실 변기에 사람이 앉아 있기도 하고, 여러 명이 집에 들어와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도 한다고 하였다. 뚜렷이 이목구비가 있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도 보인다고 하였다. 할아버지도 할머니와 자식들 눈에는 안 보인다고 하니 본인이 유령을 본 것이고, 그래서 이 문제를 어찌해야 하냐고 하셨다.
 
의학적으로 할아버지의 증상은 환시라고 한다. 헛것을 보면 환시, 헛것을 들으면 환청 이라고 한다. 우리도 밤에 사람과 비슷한 형체를 보고 사람으로 착각할 때가 있다. 이런 경우를 착시라고 한다. 환시는 착각을 일으킬 자극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할아버지의 증상은 환시를 동반한 치매와 몸이 느려지는 파킨슨병증이 동반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루이체치매로 진단되었고, 이에 맞는 약을 투여했다. 그리고 2주 후 헛것 보이는 것이 없어졌다고 기쁜 소식을 알려주었다. 치매를 일으키는 질병이 참 많다. 가장 흔한 것이 알츠하이머병이고 두번째가 뇌졸중에 의한 혈관치매이다. 그런데 다음으로 많은 치매를 일으키는 병은 파킨슨병증을 동반한 파킨슨치매와 루이체치매가 있고, 이 병이 환시 증상을 특징적으로 동반한다.
 
왜 파킨슨치매나 루이체 치매나 환시가 잘 나타나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질환을 가진 분들의 뇌에서 시각정보를 조절하는 뇌 부위의 활성도가 감소되어 있음이 밝혀져 있다. 즉 시각정보에 대한 처리를 정확히 하지 못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시각 정보가 실지로 존재하는 것으로 뇌에서 인지하는 것이다. 특히 시각정보의 양이 줄어드는 밤에 더 잘 나타나며, 꿈을 꾸다가 그 장면이 실제 상황처럼 눈 앞에 전개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것을 옆에서 관찰하면 꼭 귀신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치료는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약을 투여하게 되면 의식도 맑아지고 잘못된 정보처리도 줄어들면서 환시증상을 줄일 수 있고, 치매 증상도 감소하게 된다. 등장했던 노부부는 인지기능개선제의 도움으로 더 이상 귀신 나오는 집에 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리고 간혹 헛것이 보이더라도 이것이 증상의 하나이지 귀신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인지하기 때문에 더 이상 무서운 대상이 아니었다.
 
이와 같이 루이체치매 이외에도 섬망, 뇌전증등의 상태에서도 헛것이 보이는데, 수술 후 노인들에서 잘 나타난다. 이 또한 뇌의 순잔적 이상에 의해 나타난는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상이 하도 힘들어서인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마약을 손대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마약에 의한 환시도 매우 무섭고 위협적이라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남을 해치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면 굿을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의사와 상의 하시기를 권하고 싶다. 일단 병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귀신이 아니며 병을 치료하면 헛것은 없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다 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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